20250312>0323 20250328>0409 앞UP 2024

 


갤러리 그리다 기획공모展 앞 UP 2024

2025_0312 ▶ 2025_0409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12025312-23 

참여작가 / 이주연 조예서 조윤아

22025328-49 

참여작가 / 김지연 민은희 최희준

입장료 없음

관람시간 11:00-6:00,  매주 월요일 휴관


갤러리 그리다

GALLERY GRIDA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221(창성동 108-12번지) B1

Tel. +82.2.720.6167

www.gallerygrida.com



지난 2024년으로 열두 번째 진행된 갤러리 그리다의 신진작가 공모전은 이주연(단면, 529-69), 조예서(하늘의 뼈, 91-913), 민은희(장미파!1018-1030), 최희준(수상한 세계, 111-1113), 김지연(0<0, 1122-124), 조윤아(흐르는 풍경, 머무는 시선, 126-1218)의 순으로 개인전이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전이 개별적인 작가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번의 전시는 그들의 단체전으로 2024년 공모전의 총괄 형태로 모두를 일별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공간의 특성상 전시는 1,2부로 진행합니다.


맹인모상의 이야기는 코끼리를 만져본 장님들이 각자 자신이 만져 본 부분을 근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눈으로 사물을 바라본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사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일까요? 오늘날의 소통의 부재를 낳게 되는 원인 중 한 가지는 각자가 서로가 믿는 바에 근거하여 정보를 모으고 반복적으로 내재화하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모두 같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도 서로의 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해석하는 것에서는 더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관객들에게 이주연 작가는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온전한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있을까?"


보통은 커다란 화면이나 거대한 입체물이 주는 압도함에 경탄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조형물은 익히 아는 사물이나 공간들을 낯설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인식하게끔 합니다. 조예서 작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에 의해 창조된 하늘, 바다와 같은 광활한 소재가 담겨진 작은 화면을 보며 의외로 잘 어울리는구나, 잠깐 놀랍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이들에 의해 수집된 듯한 순간의 자연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작은 창문을 통해 보는 것 같은 하늘과 바다는 관객에게 의외로 많은 대사를 던지고 있습니다.


포착된 이미지의 풍경은 우리의 일상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일상은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그 순간 순간은 그다지 큰 의미 없이 삶이라고 하는 거대한 동영상의 프레임의 한 컷일 겁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 속에 어느 순간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것 같고 그렇다고 넘기고 지나버리기엔 아쉬운 그런 지점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조윤아 작가는 그렇게 멈춰진 찰나의 프레임을 선택하여 화면에 재구성합니다. 그렇게 서술된 일상은 각자의 시선에서 서로 다른 기억을 불러들입니다. 


본다는 것을 말하자면,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그때의 순간에 대응하는 땜질처럼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눈은 뇌에 그대로 보여지는 시각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을 보정처리하여 뇌에게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말하는 것이 온전히 전달되는가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사유하지만 서로가 보고 있는 것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지연 작가는 특히 본다는 행위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보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은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한때 꽃 그림은 그렇게 진지하지 않은 회화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영향은 지금도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끌로드 모네나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는 그럼 진지하지 않은 예술을 했다는 것인가 하고 말한대도 시대가 다르다는 대답이 들려올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보며 지나치게 장식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은 유난히 신경쓰게 됩니다. 그러나 민은희 작가의 장미처럼 힘이 넘치는 경우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당당하게 선언하는 듯한 자기주장이 강한 장미를 보고 있으면  역시 어떤 소재건 작가가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나가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에게 인지되는 세계는 그다지 명료한 것이 아닙니다. 대화를 하거나 무엇인가를 읽을 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해했다고 믿는 것을 분해해 보면 맥락으로 추정하는 경우도 많고, 생략하여 지나간 경우도 많습니다. 명백하다고 생각했던 풍경이나 느끼고 있는 감정들 모두가 명백하다고 믿는 것은 개념일 뿐이고 실제로는 모두 실은 모호한 미지의 것입니다. 어쩌면 덧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라짐과 생겨남 사이의 중간 상태. 최희준 작가는 그것을 수상한 세계라고 말하며 다듬어내 관객에게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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