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7>1129 남희주 l 사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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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닌 늘 존재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함으로써 축적되어 발현되는 아름다움에서 회화적 요소를 찾는다. 자신에게 익숙한 상황, 행동, 풍경 등의 일상적인 풍경은 모두 하나의 요소가 지속적으로 축적됨에 따라 느껴지는 자연스러움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에 사람들은 적응하고 대응하며 살아간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음이 쉴 수 있는 장소, 즉 마음이 머무는 장소가 필요하다. 이 장소는 자신이 행하던 삶의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마음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내가 바라본 풍경은 정제되고 건설적이며 정돈된 모습이다. 나는 땅 부터 새로이 정비하여 계획적으로 만들어지는 도시 안에서 본래의 땅으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존재에 주목한다. 사각시간은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시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도시 개발로 기존에 있던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시간의 사이 혹은 그 이전 시간을 담아낸다. 방치된 땅에서 볼 수 있는 생명력이 존재하는 풍경을 사각시간 안에서의 시간으로 보고, 이러한 삶에서의 생명성을 잡초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다. 잡초는 사이에서 피어나는 존재에 대한 관찰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사람의 손이 닿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곳의 경계에서 자라는 식물이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밟고 다닌 존재이다. 바다와 도시개발 현장의 사이, 건물과 건물의 사이, 공사장 가림막의 안팎, 콘크리트 바닥 사이의 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을 이어가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며, 도심 속에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외부적인 요소와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유연하게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여 생명을 지켜내는 존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치열하고 강한 생명을 피워내지만 고요하게 그 자리에 존재하는 생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20231027>1108 주건우 l 얼룩, 어렴풋이 사랑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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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룩, 어렴풋이 사랑스러운 Stained, ambiguously lovely 화려하게 아름답진 못하지만, 나만의 색깔을 내며, 갖가지의 색상들이 뒤엉키는 가장 나다운 향기, 아주 작은 나만의 고백. 얼룩: 본바탕에 다른 빛깔의 점이나 줄 따위가 뚜렷하게 섞인 자국. 액체 따위가 묻거나 스며들어서 더러워진 자국. 이 세상에 지혜는 어디에나 있고, 예술과 영감은 늘 내 옆에 함께였다. 작은 고집을 한 꼬집 버리니, 나는 ‘나’에서 ‘너’로, 그리고 ‘우리’까지, 마침내 나의 시야가 넓어져 전체인 ‘나’가 새롭게 보였다.   나에겐 너무나 크고 소중했던 내 자리에서, 누구에게 빼앗길까 두려웠던 그 자리에서, 사뿐히 내려와 주변의 아름다운 선물들을 바라본다. 너무 많아 두 손으로도 부족해 들었다 놓았다 반복한다. 그리고 나는 다 내려놓고 빈 손으로 깨닫는다. 나는 지금껏 너무도 사랑 받고 있는 존재였음을 기억한다.   고개를 떨구어 나의 얼룩진 모습을 본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으려 노력했던 시간들, 나의 자리를 지켜 내려고 혼자 고군분투 하였던 그 시간들이 모여 모여 내 몸에 이런저런 색깔들이 애매모호한 얼룩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애매하게, 어렴풋이 아름답다. 뭐 저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하며 이 전의 내가 밉지만 동시에 너무도 고맙다. 바보 같이 같은 잘못을 반복했던 내가 하찮지만 또 너무 귀엽다. 저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메꿔지지 않은 빈틈들 투성이지만, 나는 이제 저 빈틈보다도 나의 아름다움을 더 보려고 한다. 이제야,,, 내가 사랑스럽다. 빈틈 투성이인 나도, 얼룩진 모습의 나도, 그래서 더욱 빛이 나는 존재였단 걸 알았다.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는다. 어린 아이가 되어 모든 색상들의 물감으로 온 몸이 얼룩이 진 채로 바보 같이 해맑게 웃으며 앉는다. 나를 보고 있는 저기 저 옆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는다. 난 지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음에 힘들면 자리에서 또 내려 와야지… 다음에는 조금

20231013>1025 이정인 l 타 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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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래’는 실이 뭉쳐 있는 모양새를 뜻한다. 인터넷상에서는 스레드(Thread)를 타래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 주제에 관해 서로 연결되어있는 게시물들 또는 개인의 생각을 엮은 글을 의미한다. 이는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를 구성하는 과정과 대응한다. 즉 본 전시는 기존의 볼펜 작품과 더불어 새로이 시도한 색연필 작품들을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기억’을 여러 관점과 작품으로 풀어내고 다시 엮는 ‘타래’가 된다.   기억이란 일상의 감각과 지각 경험을 바탕으로 시공간이 응축된 추상 관념이다. 이러한 기억의 축적은 한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지표인 인지구조를 구축하며 이는 종합적 사고 과정과 실천적 태도를 이행하는 주체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게 된다. 즉 본인은 한 개인의 존재를 이루는 총체의 근원을 기억으로 상정하여 기억들이 결집하는 양태와 이로부터 구축된 인지구조, 즉 기억구조를 시각화한다.   우리의 기억은 생생한 장면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금세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또한 어떠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기억은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물리 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희미한 잔상과도 같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기억은 과거에 경험했던 순간을 사진 또는 영상과 같은 매체처럼 완벽한 재생이 불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관심과 감정과 같은 여러 요인들의 작용은 기억의 파편화에 따른 불연속적인 회상 또는 기억의 중첩과 얽힘에 의한 확장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즉 특정한 시공간이 응축된 기억은 변화와 갱신을 반복하며 현재를 지각하는 과정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본인은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특성들을 활용한다.   또한 기억이라는 비가시적 추상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기억을 저장하고 회상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본인은 기억하고 싶은 대상이나 상황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한다. 일정 시간 동안 그 대상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대상을 비추는 빛의 흐름에 따라 시선이 이동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주로 당시의 분위기나 인상들을 기억

20230908>0920 김지현 l 풍,경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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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 , 경 ’ 은 일반적인 ‘ 풍경 ’ 이 아니다 . 작업의 주제는 ' 나의 인생 ', 그 인생을 나만의 ' 풍경 ' 으로 표현한다 . 개인이 경험한 사건의 결과들은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듯 고유한 ' 흔적 ' 들로 남는다 . 그 흔적들을 외부적 요인 ( 풍 ) 이 불어 만들어낸 , 재조합된 새로운 상태 ( 경치 ) 로 표현한다 . 이번 전시는 저번 작업의 연장선이다 . 나이가 들고 새로운 경험을 할수록 , 나에게 흔적들은 차곡히 쌓여 보다 단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 삶은 그렇지 않다 . 나는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 바람 ' 에 비유한다 . 침전되고 멈출 수 있는 공간은 바람에 의해 내면에 지진을 일으켜 , 있어야할 위치와 형태를 모호하고 어수선하 게 만든다 . 이번에도 크고 작은 바람이 불고 후에 내가 내렸던 결론들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 았다 . 나는 이렇게 시시각각 바뀌는 나의 심리에 주목하고 작업으로 옮겼다 . 인생은 필연적이기도 , 우연적이기도 하다 . 하지만 나는 거의 우연에 가깝다 생각한다 . 나에게 있는 흔적들은 언제 다시 뒤바뀔지 모른다 . 그러기에 작업들은 예상된 이미지가 아닌 , 우연적 요소들을 더한다 . 물감이나 형태가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능가 하거나 새로운 ' 풍경 ' 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 그래서 보다 함축적이고 재조합된 이미지의 새로 운 풍경의 형태가 된다 . 바람의 시작과 끝은 알 수 없다 . 나는 이 현상이 오랜 시간 반복될 것이라 생각한다 . 그리고 오히려 반복되기를 바란다 .

20230526>0607 남정환 l 이질적 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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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이 작가노트는 화가가 되고자 하는 나에 대한 비평이자 부족한 것이 많은 나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우선 작가인 나의 작업은 개인으로 볼땐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정부에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정이며 사회적인 측면에선 인간의 심리적 경계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작가 소개 나는 사람들의 심리나 편견 등 사소하면서도 미묘한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는 작가로 활동 하고 있다. 또한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국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느낀 감정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작품들의 시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추상표현주의를 지향하는 듯 하지만, 어떠한 미술적 양식을 깊게 생각하지도 집착을 하면서 그리지도 않았다. 나의 작업 스타일은 보이지 않는 물체성을 그리는데 있으며, 그러다 보니 그림에선 많은 고민의 흔적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림 설명 본인이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들이 성인이 되고 잘못된 잣대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감정을 느꼈다. 인간의 무지가 장애인들을 더 괴롭게 한다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업에 관심이 가지게 되었고 인간의 개개인의 잣대에서 나온 한마디로 ‘판 가르기’에서 느낀 비정상적인 것들과 정상적인 것의 사이에 두고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나 자신은 그러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비정상인가 아님 내가 비정상인가에 대한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순응해야 하는 감정들 그러나 이것이 나만의 고충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누구에게나 비슷하다고 느껴지며 거기에 파생되는 모순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1. 인간의 감정이 가지고 있는 괴리감에 대하여 나는 사람이 보일 듯 한 느낌의 물체를 주로 그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흔히 그림을 그

20230512>0524 최신우 l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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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은 병원에서 환자의 의안을 소독했던 경험을 통해 본인이 표현하는 구멍의 개념을 정리하게 되었다. ‘의안이 시간이 지나면 환자에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사실을 찾아가 보니, 의안은 환자 자신에게 보이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보이는 또 다른 대상의 눈이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즉 봄으로써 사유할 수 있었던 눈은 그 기능을 잃었지만, 외관만 재현된 눈이 남은 것이다. 여기서 타인에 게만 보이는 눈인 의안은 나의 조각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본인에겐 안구가 적출 된 공동(空洞)이 따뜻 한 자궁처럼 보였고, 그 때문에 의안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에게 조각은 의안과 같은 것이다. 의안은스스로사유할수는없지만,대상즉타자가되어나라는존재가인식하는주체가될수있게도 와준다. 다시 말해 본인이 표현하는 구멍의 형태는 봄(regard), 즉 ‘존재의 심장을 향해 뚫려 있는 구멍’ 인 눈을 재현한다.   우리는 개인의 존재만을 가지고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본인은 지각한 것, 그 지각적 진리의 모호성을 존재가 터져 나오는 구멍으로 표현하고 이를 매개로 타자와 관계 맺음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고자 한다. 본질을 사유케 하는 중간시간으로서의 조각은, 찢기고 이어 붙여 새롭게 탄생한 ‘애매함 (ambiguity)’이다. 결과적으로 시선을 통해 자신의 밖으로 회귀하며 존재의 주체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