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6>0427 장영준 l 시간의 틈에서 춤추는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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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버지께선 문구 도매업에 종사하셨습니다. 고무 딱지와 색칠 공책, 캐릭터 다이어리, 젤리롤 펜, 글라스 데코, 모든 게 집에 있었죠. 그러나 그중 절반은 해적판, 짝퉁, 듀프, 페이크 아이템이었습니다. 어떤 물건이 유행하면 거의 동시에 해적판이 시장에 돌았던 시대에, 유통업자가 둘을 함께 다루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것들은 대개 해적판이어서, 친구들이 정식 라이선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정작 문구를 파는 집 자식인 저만 조형이 어긋나고 조잡한 색채의 복제품을 들고 나오곤 했습니다. 해적판은 제 십대에 약간의 굴욕감과 창피함, 몇 차례의 싸움을 선물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림을 택한 이유도 해적판이 아닌 오리지널의 제작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달성 불가능한 욕망임을 알아차린 건 한참 뒤였습니다. 세계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는 시대에 진입했고, 스마트폰의 재매개는 그보다 더한 양상을 띠었습니다. 제가 해적판의 논법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매시업이란 이름으로 보편화되었고, 나아가 틱톡과 쇼츠라는 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숏폼의 흥행으로 마주친 트라우마들에서 처음 건진 것은 단순한 복제였습니다. 그러다 저는 자연스레 제 경험 이전에 존재한, 이 문화적 지층을 만든 수원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손과 눈이 100년 단위의 시공을 더듬어 나가면서, 저는 스스로를 대안 역사서를 작성하는 고고학자이자 도굴꾼으로 재발견했습니다. 이제 저는 고고학적 시선으로 과거의 지층들을 안내선 삼아 따라가며, 디지털 환경의 무제한적 덮어쓰기를 통해 화면 속 기록들에 파열하는 몸을 부여합니다. 이는 수많은 이미지와 상품들을 끊임 없이 교차시키며 스스로를 덮어쓰는 틱톡, 릴스와 같은 쇼츠들, 그리고 그것들과 이어진 테무, 알리와 같은 글로벌 해적판 쇼핑몰들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난 짝퉁 문구업체인, 제 본가에 대한 깊은 감회에서...

20250312>0323 20250328>0409 앞UP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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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그리다 기획공모展 앞 UP 2024 2025_0312 ▶ 2025_0409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 1 부 2025 년 3 월 12 일 -23 일   참여작가 / 이주연 조예서 조윤아 2 부 2025 년 3 월 28 일 -4 월 9 일   참여작가 / 김지연 민은희 최희준 입장료 없음 관람시간 11:00-6:00,   매주 월요일 휴관 갤러리 그리다 GALLERY GRIDA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2 길 21( 창성동 108-12 번지 ) B1 Tel. +82.2.720.6167 www.gallerygrida.com 지난 2024 년으로 열두 번째 진행된 갤러리 그리다의 신진작가 공모전은 이주연 ( 단면 , 5 월 29 일 -6 월 9 일 ), 조예서 ( 하늘의 뼈 , 9 월 1 일 -9 월 13 일 ), 민은희 ( 장미파 ! 워 10 월 18 일 -10 월 30 일 ), 최희준 ( 수상한 세계 , 11 월 1 일 -11 월 13 일 ), 김지연 (0<0, 11 월 22 일 -12 월 4 일 ), 조윤아 ( 흐르는 풍경 , 머무는 시선 , 12 월 6 일 -12 월 18 일 ) 의 순으로 개인전이 진행되었습니다 . 개인전이 개별적인 작가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번의 전시는 그들의 단체전으로 2024 년 공모전의 총괄 형태로 모두를 일별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 공간의 특성상 전시는 1,2 부로 진행합니다 . 맹인모상의 이야기는 코끼리를 만져본 장님들이 각자 자신이 만져 본 부분을 근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 그렇다고 눈으로 사물을 바라본다고 해도 , 있는 그대로 사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일까요 ? 오늘날의 소통의 부재를 낳게 되는 원인 중 한 가지는 각자가 서로가 믿는 바에 근거하여 정보를 모으고 반복적으로 내재화하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 사람의 눈은 모두 같지 않습니다 . 보이는 것도 서로의 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

앞UP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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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UP 2025 공모가 종료되었습니다. 다음의 작가분이 선정되셨습니다. 기보경 김상희 김정호 단수민 솔라양 이혜린 응모해 주신 모든 작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41206>1218 조윤아 l 흐르는 풍경, 머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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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그리다 기획공모 앞UP 2024 조윤아 《흐르는 풍경, 머무는 시선》 2024.12.06 - 12.18 일상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풍경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시선들이 멈추는 순간들이 있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짧게 스쳐 지나가지만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는 찰나들. 이번 전시 《흐르는 풍 경, 머무는 시선》은 그러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재구성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작업은 일상 속에서 발견한 소소한 장면들에서 출발한다. 현대의 스마트폰과 십 년 이상 된 디지털 카메라까지 다양한 도구 를 통해 포착된 이미지들은 한지 위에서 재구성되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떠돌고 부유하는 시선을 따라 포착한 풍경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멈춘 기억을 담아낸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연결을, 떠난 이들에게는 애도의 마 음을 전달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작업에 사용된 물감 토분 페이스트(Kaolin Paste)’는 조윤아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의 발인 날, 장지 의 흙이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던 기억은 깊은 작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 기억을 바탕으로, 백토 가루와 펄 안료, 분 채를 혼합해 만든 물감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 떠난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이자 작품에 담긴 감정의 물리적 흔적으로 자리잡았다. 본 전시에서는 조윤아의 2024년 상반기, 약 4개월 동안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마주한 풍경과 장면에서 시작한다. 낯 선 환경 속에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던 일상의 일부들은 카메라 렌즈에 담겨 한지 위에 겹겹이 쌓이고 해체되며 새로운 시각 적 이미지로 변모하였다. 이는 단순히 풍경을 찍는 행위를 넘어, 시간을 고요히 느끼며 장면에 몰입하며, 그 찰나를 더욱 깊 이 있게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각자의 삶 속에서 흐르는 풍경을 돌아보고, 머물렀던 시선 속 감정을 다시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조윤아 ...

20241122>1204 김지연 l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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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1>1113 최희준 l 수상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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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세계>는 사라짐과 생겨남 사이의 중간 상태를 탐구한다. 최희준은 일상에서 사라지고 움직이는 미묘한 순간들을 그리며, 그 과정에서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세상의 순간순간이 사실은 해체와 재구성의 연속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마치 물의 표면이 빛과 함께 끊임없이 흔들리듯, 그의 작업에서도 선과 색은 하나의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흐트러지고 섞이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최희준은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좀처럼 답을 내릴 수 없는 의심스러운 감정을 ‘수상한 세계’로 풀어내고 있다. 그가 느낀 수상함은 일상 속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에 대한 낯섦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세계는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나 방향을 쉽게 체감하기 어렵다. 바다의 파도와 모래사장은 언제나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어항 속 물고기, 날아가는 새, 사람들의 모습 또한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닌 수많은 관계와 사건이 얽혀 이루어져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형상은 끊임없이 유동하며 한 순간도 같은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모든 것은 잠깐의 변함이 없는 사건일 뿐이며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 희미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계속해서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최희준은 작업실 앞 개천에서 시작한 야외 드로잉을 통해 물 속에서 반사되고 흐트러지는 장면을 포착하고, 이후 수족관과 바다로 여러 대상을 탐색해 나갔다. 그의 작업에서 시간은 고정된 형상이 아닌, 계속해서 변형되고 해체되는 선과 색감의 흐름으로 표현된다. 어항, 물고기, 바다와 같은 형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선과 선 사이의 유동적인 공간에서 변형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의 작업에서 세상의 사물들은 고정된 형상이 아닌, 흩어지는 선들의 집합으로 그려지며, 이들은 움직임과 상호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이러한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