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지께선 문구 도매업에 종사하셨습니다. 고무 딱지와 색칠 공책, 캐릭터 다이어리, 젤리롤 펜, 글라스 데코, 모든 게 집에 있었죠. 그러나 그중 절반은 해적판, 짝퉁, 듀프, 페이크 아이템이었습니다. 어떤 물건이 유행하면 거의 동시에 해적판이 시장에 돌았던 시대에, 유통업자가 둘을 함께 다루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것들은 대개 해적판이어서, 친구들이 정식 라이선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정작 문구를 파는 집 자식인 저만 조형이 어긋나고 조잡한 색채의 복제품을 들고 나오곤 했습니다. 해적판은 제 십대에 약간의 굴욕감과 창피함, 몇 차례의 싸움을 선물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림을 택한 이유도 해적판이 아닌 오리지널의 제작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달성 불가능한 욕망임을 알아차린 건 한참 뒤였습니다. 세계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는 시대에 진입했고, 스마트폰의 재매개는 그보다 더한 양상을 띠었습니다. 제가 해적판의 논법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매시업이란 이름으로 보편화되었고, 나아가 틱톡과 쇼츠라는 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숏폼의 흥행으로 마주친 트라우마들에서 처음 건진 것은 단순한 복제였습니다. 그러다 저는 자연스레 제 경험 이전에 존재한, 이 문화적 지층을 만든 수원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손과 눈이 100년 단위의 시공을 더듬어 나가면서, 저는 스스로를 대안 역사서를 작성하는 고고학자이자 도굴꾼으로 재발견했습니다. 이제 저는 고고학적 시선으로 과거의 지층들을 안내선 삼아 따라가며, 디지털 환경의 무제한적 덮어쓰기를 통해 화면 속 기록들에 파열하는 몸을 부여합니다. 이는 수많은 이미지와 상품들을 끊임 없이 교차시키며 스스로를 덮어쓰는 틱톡, 릴스와 같은 쇼츠들, 그리고 그것들과 이어진 테무, 알리와 같은 글로벌 해적판 쇼핑몰들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난 짝퉁 문구업체인, 제 본가에 대한 깊은 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