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7>0429 서휘 | 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 The house with the crazy neighbor
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 2025, oil on canvas, 90.9×72.7cm -작가노트 내가 사는 동네에는 돈사가 있고, 그곳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호소한다. 그러나 축사는 인간이 육류를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기덩이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의 고통과 혐오스러운 공간이 필요하며, 우리는 이를 소비함으로써 그 착취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동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존재를 단지 ‘불쾌한 이웃’으로 치부한다. 내 작업은 이러한 외면과 배제의 구조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번 작업에서 사회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고도 쉽게 타자화해온 존재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소비의 구조는 가축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삶과 몸, 그리고 서사를 끊임없이 소비한다. 특히 성노동자나 미디어 속 인물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된 채 쉽게 판단되고 평가된다. 그들의 복잡한 맥락은 지워지고, 자극적인 장면과 단편적인 정보만이 남아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흥밋거리로 전락한다. 최근 나는 유명인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 드러났을 때, 이를 거의 용서하지 않으려는 대중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다. 잘못의 크기나 맥락과 무관하게 한 번 흠집이 생긴 인물은 빠르게 낙인찍히고 집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비판은 쉽게 도덕적 우월감으로 전환되며, 개인의 실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이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라기보다, 타인을 단죄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전한 위치에 두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결함과 균열을 응시하는 동안 자신의 불완전함은 잠시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인의 삶은 하나의 ‘볼거리’ 로 기능하며, 존재는 맥락을 잃고 단지 소비되기 위한 이미지로 남는다. 이번 시리즈의 제목인 「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은 이소호 작가의 단편소설 『나의 미치광이 이웃』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표현은 이해되지 않는 존재를 불편해하고, 타자로 밀어내려는 사회의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