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7>0429 서휘 | 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 The house with the crazy neighbor
- 작가노트 내가 사는 동네에는 돈사가 있고 , 그곳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호소한다 . 그러나 축사는 인간이 육류를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고기덩이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의 고통과 혐오스러운 공간이 필요하며 , 우리는 이를 소비함으로써 그 착취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동조하고 있다 . 그럼에도 우리는 그 존재를 단지 ‘불쾌한 이웃’으로 치부한다 . 내 작업은 이러한 외면과 배제의 구조에서 출발한다 . 나는 이번 작업에서 사회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고도 쉽게 타자화해온 존재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 이러한 소비의 구조는 가축에만 머물지 않는다 . 우리는 타인의 삶과 몸 , 그리고 서사를 끊임없이 소비한다 . 특히 성노동자나 미디어 속 인물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된 채 쉽게 판단되고 평가된다 . 그들의 복잡한 맥락은 지워지고 , 자극적인 장면과 단편적인 정보만이 남아 소비된다 . 이 과정에서 타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 흥밋거리로 전락한다 . 최근 나는 유명인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 드러났을 때 , 이를 거의 용서하지 않으려는 대중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다 . 잘못의 크기나 맥락과 무관하게 한 번 흠집이 생긴 인물은 빠르게 낙인찍히고 집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 이 과정에서 비판은 쉽게 도덕적 우월감으로 전환되며 , 개인의 실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 이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라기보다 , 타인을 단죄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전한 위치에 두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 타인의 결함과 균열을 응시하는 동안 자신의 불완전함은 잠시 가려지기 때문이다 . 그렇게 타인의 삶은 하나의 ‘볼거리’ 로 기능하며 , 존재는 맥락을 잃고 단지 소비되기 위한 이미지로 남는다 . 이번 시리즈의 제목인 「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은 이소호 작가의 단편소설 『나의 미치광이 이웃』에서 차용한 것이다 . 이 표현은 이해되지 않는 존재를 불편해하고 , 타자로 밀어내려는 사회의 태도를 은유한다 . 내가 주목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