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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1>1101 이민경 | 균열 생장: HABIT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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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공학은 재료에 생긴 균열이 길어지는 현상을 '균열 성장'이라 부른다. 파손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고, 측정하고 늦추고 막아야 할 대상이다. 나는 같은 현상을 '생장(生長)'이라 고쳐 부른다. 생장은 식물학이 살아 있는 것에만 쓰는 말이다. 한 글자를 바꾸면 도로의 결함은 자라는 것이 된다. 나는 도시의 길을 걸으며 균열을 고른다. 모든 균열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틈 앞에서 한지를 겹겹이 올려 그 깊이와 가장자리의 부스러짐까지 떠낸다. 바닥에 움푹 패여 있던 음각은 종이 위에서 양각으로 솟는다. 발아래 수평으로 누워 있던 것은 벽에 걸려 눈높이에서 관객과 마주 선다. 작품의 주재료인 한지는 나무에서 왔지만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재료다. 아스팔트도 자연에서 나와 가공된 물질이다. 같은 내력을 지닌 두 재료가 균열이라는 자리에서 만난다. 젖은 한지의 섬유는 틈의 미세한 요철까지 따라 들어간다. 이 작업이 한지여야 하는 이유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맨홀과 그 둘레의 균열을 함께 떠낸 작업이 있다. 맨홀 뚜껑에는 격자와 문자가 새겨져 있다. 누군가 설계하고 규격을 정하고 관리하는 원이다. 그 원의 바깥으로 균열이 뻗는다. 어느 도면에도 없고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은 선이다. 녹색은 그 선의 도드라진 자리에만 얹었다. 식물을 그리지 않았는데 균열이 식생으로 읽힌다. 연작의 이름인 서식지(HABITAT)는 이 틈들을 가리킨다. 인간이 설계한 도시라는 문명의 발밑에 균열이 가해지고, 나는 그 균열을 통해 인간이 뒤덮은 세계에 조용히 자생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찾아낸다. 아스팔트의 틈은 잡초와 이끼가 깃드는 미세 서식지다. 도로는 평평하고 매끈해야 하는 관리의 대상이고, 균열은 곧 메워진다. 내가 떠낸 틈도 언젠가 보수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메운 자리는 다시 갈라진다. 나는 그 반복을 누구의 실패나 승리로 읽지 않는다. 도시의 표면이 인간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갱신되고 있을 뿐...

20261002>1014 정규형 | 누구도 적지 않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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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2>0913 김종혁 | 內面構造學 내면구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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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0603 박주미 | 움집 Hide in to th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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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0517 이정희 |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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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130.3x80.3cm, oil on canvas, 2026   작가노트   나의 작업 속 좌절이 있는 낙원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과 우리가 존재하는 이 불완전한 자리. 그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감정들을 담는다.   우리는 어떤 회화를 남겨야 하는가. 결국 이 질문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세계를 꿈꾸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불안과 결핍, 좌절을 안은 채 각자의 방식으로 낙원을 상상하고 살아간다. 거기에서 출발하여 좌절이 있는 낙원이라는 역설적인 풍경을 그린다. 화면 속 자연은 때론 밝고 따뜻한 빛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안에 놓은 인물들은 고요 속에서 각자의 감정을 견디고 있다. 서로 가까이 존재하면서도 완전히 닿지 못하고, 휴식과 불안은 동시에 머문다. 이 장면들은 이상향의 이미지와 현실의 감정이 겹쳐진다.   작품 속 낙원은 완성된 장소가 아니라, 변화하는 상태에 가깝다. 그것은 각자가 지닌 아픔과 고민, 불안을 포함한채로 존재한다. 자연풍경을 변형하고 재구성하며, 동시에 인물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내면의 상태를 시각화 한다. 특히 꿈이라는 개념이 작업에 내재되는데, 여기서 꿈은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하나는 잠 속에서 경험하는 무의식의 장면이며, 다른 하나는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서의 꿈이다. 이 두 의미가 서로 겹쳐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꿈에서 포착한 이미지에서 작업이 시작되기도 하며, 감각과 기억이 혼합되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최근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밤의 어둠 앞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 쏟아지는 물의 거스를수 없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의 긴장감. 이러한 상황속에서 인물은 멈추기보다는 그 안에서도 나아가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때 화면에는 머무름과 움직임. 안정과 위태로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완전한 이상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우리는 왜 여전히...

20260417>0429 서휘 | 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 The house with the crazy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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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 2025, oil on canvas, 90.9×72.7cm -작가노트 내가 사는 동네에는 돈사가 있고, 그곳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호소한다. 그러나 축사는 인간이 육류를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기덩이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의 고통과 혐오스러운 공간이 필요하며, 우리는 이를 소비함으로써 그 착취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동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존재를 단지 ‘불쾌한 이웃’으로 치부한다. 내 작업은 이러한 외면과 배제의 구조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번 작업에서 사회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고도 쉽게 타자화해온 존재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소비의 구조는 가축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삶과 몸, 그리고 서사를 끊임없이 소비한다. 특히 성노동자나 미디어 속 인물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된 채 쉽게 판단되고 평가된다. 그들의 복잡한 맥락은 지워지고, 자극적인 장면과 단편적인 정보만이 남아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흥밋거리로 전락한다. 최근 나는 유명인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 드러났을 때, 이를 거의 용서하지 않으려는 대중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다. 잘못의 크기나 맥락과 무관하게 한 번 흠집이 생긴 인물은 빠르게 낙인찍히고 집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비판은 쉽게 도덕적 우월감으로 전환되며, 개인의 실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이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라기보다, 타인을 단죄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전한 위치에 두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결함과 균열을 응시하는 동안 자신의 불완전함은 잠시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인의 삶은 하나의 ‘볼거리’ 로 기능하며, 존재는 맥락을 잃고 단지 소비되기 위한 이미지로 남는다. 이번 시리즈의 제목인 「미치광이 이웃이 사는 집」은 이소호 작가의 단편소설 『나의 미치광이 이웃』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표현은 이해되지 않는 존재를 불편해하고, 타자로 밀어내려는 사회의 태...

20260313>0325 20260401>0412 앞UP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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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그리다 기획공모展 앞 UP 2025 2026_0313 ▶ 2026_0412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1부 2026년 3월 13일-25일   참여작가 / 김상희 김정호 단수민 솔라양 이혜린 2부 2026년 4월 1일-4월 12일   참여작가 / 김상희 김정호 단수민 솔라양 이혜린 입장료 없음 관람시간 11:00-6:00,   매주 월요일 휴관 갤러리 그리다 GALLERY GRIDA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2길 21(창성동 108-12번지) B1 Tel. +82.2.720.6167 www.gallerygrida.com 지난 2025년으로 열세 번째 진행된 갤러리 그리다의 신진작가 공모전은 솔라양(잠들지 않는 수풀, 5월 30일-6월11일), 이혜린(LOVE LOVE LOVE, 9월12일-9월24일), 김정호(검은 숲:길 잃기 위한 산책, 10월17일-10월29일), 김상희(Trimmed Landscapes: The Valley, 10월31일-11월12일), 단수민(풍경파편, 11월21일-12월3일)의 순으로 개인전이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전이 개별적인 작가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번의 전시는 그들의 단체전으로 2025년 공모전의 총괄 형태로 모두를 일별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공간의 특성상 전시는 1,2부로 진행합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삶을 살았던 솔라양 작가는 자신이 머물렀지만 지금은 낯설어진 공간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면서 풍경을 화면 속에 펼쳐보입니다. 각자의 기억은 각자의 세계관에 의해 재구성되고, 편견에 의해 임의로 수정됩니다. 찢어진 메모지를 이리저리 모아 붙인 것처럼 되살려낸 기억은 완벽하지 않으며, 흐릿해지고 불완전한 이미지들만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작가의 작업은 기억의 재생산이 아닌 새롭게 만들어가는 정신일 것입니다. 화면 속에 재현되는 풍경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며, 우리가 기억의 숲에서 헤메고 있는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반쯤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