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3>1025 이정인 l 타 래
‘타래’는 실이 뭉쳐 있는 모양새를 뜻한다. 인터넷상에서는 스레드(Thread)를 타래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 주제에 관해 서로 연결되어있는 게시물들 또는 개인의 생각을 엮은 글을 의미한다. 이는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를 구성하는 과정과 대응한다. 즉 본 전시는 기존의 볼펜 작품과 더불어 새로이 시도한 색연필 작품들을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기억’을 여러 관점과 작품으로 풀어내고 다시 엮는 ‘타래’가 된다.
기억이란 일상의 감각과 지각 경험을 바탕으로 시공간이 응축된 추상 관념이다. 이러한 기억의 축적은 한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지표인 인지구조를 구축하며 이는 종합적 사고 과정과 실천적 태도를 이행하는 주체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게 된다. 즉 본인은 한 개인의 존재를 이루는 총체의 근원을 기억으로 상정하여 기억들이 결집하는 양태와 이로부터 구축된 인지구조, 즉 기억구조를 시각화한다.
우리의 기억은 생생한 장면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금세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또한 어떠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기억은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물리 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희미한 잔상과도 같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기억은 과거에 경험했던 순간을 사진 또는 영상과 같은 매체처럼 완벽한 재생이 불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관심과 감정과 같은 여러 요인들의 작용은 기억의 파편화에 따른 불연속적인 회상 또는 기억의 중첩과 얽힘에 의한 확장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즉 특정한 시공간이 응축된 기억은 변화와 갱신을 반복하며 현재를 지각하는 과정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본인은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특성들을 활용한다.
또한 기억이라는 비가시적 추상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기억을 저장하고 회상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본인은 기억하고 싶은 대상이나 상황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한다. 일정 시간 동안 그 대상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대상을 비추는 빛의 흐름에 따라 시선이 이동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주로 당시의 분위기나 인상들을 기억으로 저장하게 된다. 이는 대상을 파악하고 이를 가시적인 것으로 재현하는 것에 익숙한 본인에게 빛과 어둠, 즉 명암의 흐름을 읽는 것은 예술가의 습성과도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관찰을 지속하는 동안 강렬한 빛이 시각을 자극하여 경험하게 되는 잔상효과와 어떠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카메라 렌즈에 빛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형상들로부터 도출한 둥근 형태, 직선, 기둥, 단면과 같은 기초 조형들은 본인의 기억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이를 기반으로 작품의 전면에는 여러 기억 이미지들이 결집한 양상이 밀집하여 하나의 공간을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이 공간은 기억 이미지들이 구축한 기억구조이며 나아가 한 개인의 정체성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한 기존의 볼펜 작업을 거듭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기억을 가진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지게 되었으며 그에 대한 결과물이 <그때, 그곳> 연작이다. 색연필로 담아낸 풍경들은 현재 본인의 생각과 관점, 취향, 기억구조 등에 영향을 준 기억들로, 그림에 담긴 당시의 시간과 공간을 관람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이렇듯 기억들을 회상하고 작업으로 옮기는 과정은 과거의 나와 마주하여 현재를 되돌아보고 나아가 미래의 나를 그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와 더불어 구체적인 이미지와 장면을 그리는 시도는 향후 작업의 방향성에 영향을 주는 단초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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