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5>0326 20230331>0412 앞UP 2022


 UP 2022 2023 0315 > 0412


지난 2022년으로 번째 진행된 갤러리 그리다의 신진작가 공모전은 김도현(충전[:], 4 22-54), 김정우(현상의 이면, 56-518), 배지인(, , , 527-68), 윤근영(One Frame, 610-622), 김희진(아파트 가변설치, 1118-1130), 정우빈(영원 간택자, 122-1214) 순으로 개인전이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전이 개별적인 작가들과 만날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번의 전시는 그들의 단체전으로 2022 공모전의 총괄 형태로 모두를 일별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공간의 특성상 전시는 1,2부로 진행합니다.


본래 충전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라고 김도현 작가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어느 충전이라는 단어는 우리 속에 일상적으로 스며든 말입니다. 18세기에 떠돌던인간 기계론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계는 메뉴얼에 적힌 대로 이런저런 정비를 받고, 때로는 오버홀도 받지만 우리 인간의 처지는 오히려 그만 못합니다. 인간의 3 욕구 하나인 다른 욕구와는 달리 그나마 쉽게 구할 있는 욕망이지만 이마저도 쉽게 충족할 수는 없습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수면을 유예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숲이나 해변과 같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죽은 쓰러져 잠을 취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달래 봅니다. 


예술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어떤 것을 기대하건 아래의 토대에는 예술 노동자의 노동이 깔려 있습니다. 김정우 작가가 고른 재료들은 판넬과 시멘트, 페인트와 에폭시입니다. 모두 충실하게 건설업을 대변하는 재료들입니다. 건설업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에도 막상 건설업 불황이라면 우려의 목소리들이 유령처럼 공허하게 떠돌아 다닙니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합니다. 노동현장에 사용된 재료를 전시장에 펼치면  본래 생산자가 부여한 의미,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사용 방법들로부터 벗어납니다. 건설 현장에서 만났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날것같은 추상적 화면은 점차 작가의 의지가 구체성을 담아내는 경향을 보여주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선명하게 각인된 특별한 기억이 아니라면 인간의 뇌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기억 저장소의 어느 곳인가에 선명한 영상으로 위치해 있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샬 맥루한은 바퀴는 발의 연장이고 옷은 피부의 연장이다라고 고찰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기억의 연장이 아닐까요. 그러나 사진이 재연하는 것은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정지된, 건조한 찰나의 순간입니다. 배지인 작가의 작업은 기억의 층위를 헤집어가며 전체의 맥락을 떠올리게 하는 점에서 기록된 찰나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가 화면상에 표현하고 있는 선명하면서도 뚜렷하지 않은 이미지야말로 기억을 반추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이 아닐까요.


‘‘아파트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는지는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두려워집니다. 어느새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매김한 아파트는 생활상의 편리 외에도 사회적 합의에 의한 환금성까지 더해져 매력적인 삶의 공간이자 투자처가 되었습니다. 떄로는 사람의 인생을 대변하는 이력서가 되고, 하우스푸어와 벼락거지라는 낱말들에 들러붙은 욕망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김희진 작가에 의해 수평선과 수직선이 촘촘이 중첩되며 섬세하지만 단순한 조형으로 재현되는 아파트 단지는 실체의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관객을 위압하지 않습니다. 화면 위의 아기자기한 단지는 그것이 가진 이런저런 사회적 의미를 벗어나 실체로서의 의미에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RGB 빛의 삼원색으로, 흔히 보는 텔레비전이 우리가 만나는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입니다. 윤근영 작가는 여기에 흑백을 추가합니다. 흑과 백은 RGB 모두가 있거나 없는 상태입니다. 빛으로 구현되는 체계를 CMYK 안료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회화란 처음부터 그러한 것이었지요. 가까이에서 보면 살짝 번져나가는 듯한 동그란 점들이 있습니다. CRT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직사각형의 층층이 겹쳐진 도트들이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번져가며 영상을 송출합니다. 동그란 점은 인쇄물의 망점을 환유한 듯한 느낌입니다. 이전부터 나타나던 기하학적인 도형은 여전하지만, 이제 두드러지는 강한 보색대비와 작가의 개별성을 선언하는 붓놀림이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천 동안 일상은 지루하게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계급이나 직업 같은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기근이나 역병과도 같은 급격한 변화가 생겨도, 어찌할 없는 운명 같은 것으로 개별적인 인간은 닥쳐온 환난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 시대에 비해 확연히 재난이 줄어들었지만, 도리어 불안은 현대 사회의 풍토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만연합니다. 정우빈 작가가 골라낸 일상적인 오브제들은 화면 속에서 비일상적으로 조합되어집니다. 선택한 이미지들은 많은 경우 변주곡처럼 조금씩 달라진 채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불안에서 발생하는 막연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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