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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30>0511 심미나 l 2025_구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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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미나 작가는 한병철의 < 투명사회 > 와 같은 맥락으로 인간은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다고 말한다 . 작품은 과잉된 사회 속에서의 버려지고 낭비되는 시간 , 과다 데이터의 폭력과 절차에 의한 피로감으로 시작되었다 . 포스트 미디어 사회에서 발생하는 과잉 생산과 이미지의 혼재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적 사유와 행위를 시작으로 한다 . 자기상의 유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객관화하며 온전한 본인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한 소거의 작업을 시작한다 . 지우고 비우며 흔적을 남기는 붓질의 수행을 통해 자아 성찰의 시간을 제시한다 . 마음보다는 외적인 것에 치중하며 정작 가장 중요한 내면을 다루는 것조차 잊혀졌다 . 심미나 작가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 현대는 특히 다양한 외부 자극으로 인해 본인의 내면의 마음을 다룰 여유조차 없기에 심미나 작가의 추상회화는 현대인에게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필수적인 시간의 경험을 선사한다 . 추상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어 하는 분들이 많은데 추상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해석이 가능하다 . 내면을 성찰하고 대화하며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작품에 보여지는 색채는 관람객의 주관에 의한 색의 잔상이 개인마다의 기억 또는 추억으로 또 다른 감각의 전이 현상을 경험한다 . 이는 관람객의 내면의 대화를 마주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 LED 빛과 물의 관계성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 , 선 , 면에 색채가 더해지면 , 그 미적 대상으로부터 받는 인상은 한층 더 커진다 . 특히 빛에 의해 변화되는 색채를 도드라지게 시각화한 작품은 단 색조의 작품이나 흑백의 드로잉에서 느끼게 되는 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와는 차원이 다른 심미적 감흥을 안겨준다 . 이러한 예술 감상의 풍요로운 지대에로 우리를 유도라도 하듯 , 심미나 작가는 색채와 빛을 통한 인간의 내적 울림에 그 누구보다도 큰 관심을 쏟으면서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회화적 표...

20250416>0427 장영준 l 시간의 틈에서 춤추는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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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버지께선 문구 도매업에 종사하셨습니다. 고무 딱지와 색칠 공책, 캐릭터 다이어리, 젤리롤 펜, 글라스 데코, 모든 게 집에 있었죠. 그러나 그중 절반은 해적판, 짝퉁, 듀프, 페이크 아이템이었습니다. 어떤 물건이 유행하면 거의 동시에 해적판이 시장에 돌았던 시대에, 유통업자가 둘을 함께 다루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것들은 대개 해적판이어서, 친구들이 정식 라이선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정작 문구를 파는 집 자식인 저만 조형이 어긋나고 조잡한 색채의 복제품을 들고 나오곤 했습니다. 해적판은 제 십대에 약간의 굴욕감과 창피함, 몇 차례의 싸움을 선물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림을 택한 이유도 해적판이 아닌 오리지널의 제작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달성 불가능한 욕망임을 알아차린 건 한참 뒤였습니다. 세계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는 시대에 진입했고, 스마트폰의 재매개는 그보다 더한 양상을 띠었습니다. 제가 해적판의 논법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매시업이란 이름으로 보편화되었고, 나아가 틱톡과 쇼츠라는 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숏폼의 흥행으로 마주친 트라우마들에서 처음 건진 것은 단순한 복제였습니다. 그러다 저는 자연스레 제 경험 이전에 존재한, 이 문화적 지층을 만든 수원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손과 눈이 100년 단위의 시공을 더듬어 나가면서, 저는 스스로를 대안 역사서를 작성하는 고고학자이자 도굴꾼으로 재발견했습니다. 이제 저는 고고학적 시선으로 과거의 지층들을 안내선 삼아 따라가며, 디지털 환경의 무제한적 덮어쓰기를 통해 화면 속 기록들에 파열하는 몸을 부여합니다. 이는 수많은 이미지와 상품들을 끊임 없이 교차시키며 스스로를 덮어쓰는 틱톡, 릴스와 같은 쇼츠들, 그리고 그것들과 이어진 테무, 알리와 같은 글로벌 해적판 쇼핑몰들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난 짝퉁 문구업체인, 제 본가에 대한 깊은 감회에서...